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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돈의 세계입니다. 금전 화폐 엽전 등 돈을 일컫는 말들은 무척 다양하고 많습니다. 돈을 뭐라고 부르든간에 돈에 울고 돈에 웃는 게 우리의 인생입니다.

지난 한해 뉴욕 월가와 런던 시티 금융가의 큰손들이 많은 눈물을 흘렸었죠. 세계를 호령하는 큰손들이 나락으로 떨어지는동안 사람들은 돈을 은행에 예금해야할지 집안 금고에 넣어야할 지 걱정했습니다. 

 

2007년 여름에 시작된 금융위기,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미국에 국한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가 어떻게 해서 월가의 거대한 회사들을 부도로 몰아가고 대서양 은행들을 국유화시킬 정도로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을까요?

 

전 세계의 경제를 얼마나 초토화 시켰던지, 이 프로그램의 제목을 돈의 추락으로 바꿔야 되는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금부터 돈이 우리의 삶에 깊숙히 개입하게 된 과정을 저와함께 살펴보시겠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이어져 내려온 금융사의 뒷 이야기입니다.

은행의 지원으로 르네상스 운동이 전개되었고 채권 시장의 움직임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갈렸습니다.

주식 시장을 기반으로 대영제국이 일어섰고, 화폐가치의 붕괴가 프랑스 혁명을 초래했습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현대 런던에 이르기까지 돈의 번영은 곧 인간의 번영이었습니다.

하지만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금융사는 반복되는 위기의 역사였고 오늘날의 금융위기도 그중  한페이지에 불과합니다.

출렁이는 부동산과 중국의 급속한 산업화까지 금융의 막대한 짐은 우리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알고계십니까? 은행이 파산하거나 금융시장이 붕괴되고 주식시장이 폭락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서브프라임과 프라임 대출의 차이는 무엇인지?

돈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만 이해가 쉬울텐데요. 

바로 이점때문에 금융사가 학술적인 가치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입니다.

금융위기라고 하지만 세계금융계를 떠도는 돈의 양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올해 미국의 총 통화 공급 규모는 총 8조7000억 달러로 작년보다 12% 늘었습니다.

물론 그 돈 중 상당 부분을 챙기는 몇몇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금융 위기라고 하지만 20세기 최고의 조지 소로스는 작년에 24억달러를 벌었습니다.

미국 평균 연봉의 41,000배에 이르는 금액입니다. 월가라면 "잘 했다."라고 칭찬하겠죠.

 

돈이 없는 세상을 한 번 상상해 볼까요? 

약 500년 전, 잉카 제국에는 돈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잉카인들은 귀금속을 미적인 가치로만 평가를 했습니다.

금은 햇님의 땀, 은은 달님의 눈물이라고 불렀죠.

공산주의 사회와 마찬가지로, 훗날 잉카 제국의 노동력은 가치의 단위었습니다.

그런데 1532년 잉카인들은 돈 때문에 바다를 건넌 한 유럽 남자를 만나게 됐습니다

엘도라도의 전설을 따라 페루를 찾은 프란시스코 피사로와 스페인 정복자들이었습니다.

까하마르까 전투에서 잉카군을 무찌른 스페인 정복자들이 본격적으로 금을 찾아 나섰습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볼리비아에 속하는 뽀또시지방에서 큰 덕을 봤습니다.

부의 언덕이라고 불리는 세로리코 산을 발견한 거죠. 해발 4800미터가 넘는 산은 말 그대로 돈의 산이었습니다.

스페인 통치 250년동안 안데스 산맥 광산에에서 무려 62,000톤 이상의 금을 캐냈습니다.

잉카인들은 유럽인들이 왜 금과 은에 열광하는지 의아해했습니다.

피사로와 그 동료들에겐 금속이 이상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죠.

금과 은은 곧 돈이었습니다. 가치의 저장소, 계산의 단위, 휴대할 수 있는 권력이었죠.


아, 광산 안이 으스스한데요. 하, 스페인 통치자들이 강제 노동제를 운영함에 따라 원주민 장정들은 모두 이 광산에서 일을해야했습니다. 8명중 1명은 살아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이 이해가 가는군요.

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세로니코 광부들의 행태는 비슷합니다. 지금은 그나마 돈이라도 받죠.

과거에는 원주민들을 학대하다시피 했습니다.

 

캐낸 은은 수은으로 정재한 뒤에 은괴 또는 은전으로 만들어 유럽으로 보냈습니다

탐욕에 빠진 스페인 왕가는 그들이 꿈꾸던 것 이상으로 부유해 졌습니다.

아 하지만 뽀또시의 막대한 은으로도 스페인 제국의 경제적 정치적 몰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젠 피사로의 행운이 끝났던 것일까요?

은의 가치를 하락 시킬정도로 은을 지나치게 많이 채취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은전은 더 이상 스페인을 부유하게 해주지 못했습니다.

똑같은 물건에 더 많은 가치가 메겨지면서 물가는 오르기만했죠.

돈은 그 교환 가치만큼만 값어치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겁니다.

은전, 조괴, 금괴 은행권 그 무엇이 됐든간에 

태초부터 오늘날까지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사람들이 그렇다고 믿기만하면 흙이 은전보다 값어치가 있을 수 있습니다.

4000년전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이 같은 점토 판에다 금융거래를 기록했습니다.

자 그럼 한번 볼까요. 어디보자 바그다드에서 발견된이 점토판에는 수확 때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곡식 330개를

갚는다고 적혀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이 흥미롭습니다. 이 점토판의 주인에게는 고리 넉대를 준다고 적혀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점토판 주인에게도 곡식을 줬다는 사실입니다.

 

영국의 20파운드 지폐를 살펴보면 눈에 익은 문구가 들어옵니다.

사실상 지폐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고대 바빌론의 점토판과 마찬가지로 그저 지불하겠다는 약속에 불과합니다.

미화 10달라짜리 뒷면에는 하나님을 믿고고 의지합니다라고 씌여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건이나 노동을 제공하고 이같은 종이 뭉치를 받는다는 것은 미국 재무부 장관이 과거 스페인이  지나치게 많은 은을 재취해 은의 가치를 하락시킨 것처럼 종이의 가치를 떨어트리는일은 없다고 믿는것과 마찬가지죠.

어쨋든 사람들은 현재 종이 화폐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돈에도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이 여성은 하루에 수백억 달라를 만집니다. 실상은 만지는 것이아니라 컴퓨터 화면으로 보는 것이죠. 외환 딜러는 돈을 사고 파는 일을 합니다. 하루에 삼조 달러 정도가 이러한 거래 형태로 시장을 오갑니다.

모두 신용만으로 가능합니다. 만질수도 없는데 그저 믿을 뿐입니다. 바로 이런 점을 스페인 정복자들은 간과한 것입니다.

돈이란 곧 믿음이라는 사실을요. 화폐를 발행한 중앙은행에 대한 믿음, 수표를 발행한 은행에 대한 믿음. 돈은 금속이 아니라 믿음임 셈입니다. 종이나 은 점토 또는 컴퓨터 화면이든, 받는이가 믿으면 그 뿐입니다.

 

돈은 상호 신뢰 체제에 근간을 이루며 큰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세계사를 다시 쓸 정도로 큰가능성을 말이죠.

오늘 빌려준 돈을 내일 혹은 모레 돌려받을 수 있다는 확신 영어로 신용이라는 뜻의 크레딧은 라틴어 크레도(Credo)

즉, 나는 믿는다가 그 어원입니다.

신용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면 세계 경제사는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는 현대 문명이 대출과 차용에 얼마나 의존적인지 모른채 살고있습니다

물론 돈이 세상을 전부 움직이진 않습니다. 사람들과 용역과 물건들도 있죠?

고대도시 바빌론도 그랬고 볼리비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예상과 달리 초기 대부업자들은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고마워하기는 커녕 천대를 받았죠.

왜그랬을까요?

 

서기 1200년경 이탈리아 북부지방으로 가보죠.

도시 국가들이 서로 다투며 난립하던 곳입니다.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위험한 시절이었죠.

로마 제국이 남긴 유산 중 하나는 단위가 커지면 계산이 복잡해지는 숫자 체계입니다.

각기 다른 7가지 주화가 유통되는 피사에서는, 상인들을 중심으로 숫자 정립의 필요성이 절실했습니다.

간단한 거래에도 주판이 필요했으니까요. 반면에 동방제국인 이슬람 제국과 중국 송나라의 경제활동은 훨씬 발달했습니다. 유럽은 근대적인 재무 체계를 수입해야 했습니다.

 

이때 피사에서 레오나르도 피보나치 같은 젊은 수학자가 탄생합니다.

피사출신 세관원의 아들로 그의 이름을 딴 피보나치 수열로 유명하죠 피보나치 수열은 그의 저서계산의 책이라고 하는 리베르 아바치에서 소개된 동양 수학 사상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피보나치는 아라비아 숫자가 로마 숫자보다 더 우월하다고 증명했는데 이를위해 그가 제시한 예들은 상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로마 시대부터 유럽인들은 간단한 셈조차 어려워했습니다.

하지만 아라비아 숫자를 쓰면 각종 계산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피보나치는 회계 환전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자 계산에 새로운 계산법을 적용했습니다.

로마 숫자로 백분률을 환산하는 것이 상상이 되십니까

하지만 피보나치의 리베르 아바치를 보면 무척 간단합니다.

이후 수학을 응용해서 돈을 벌기 시작했죠.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은 금융 제도가 발전하기에 적합했습니다.

피보나치의 고향 피사도 그중하나였습니다.

특히 동방과의 교류가 많았던 베네치아는 대부업의 실험장이 되었습니다.

 

베네치아는 문학 사상 가장 악명을 떨쳤던 대부업자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네치아의 상인에 등장하는 샤일록의 고향이죠.

나를 도와주겠는가? 나를 기쁘게 해줄텐가? 하... 답을 주시게

샤일록은 바사니오의 친구이자 상인인 안토니오가 보증을 서야만 돈을 빌려주겠다고 말합니다.

 

3000두캇을 석달 기한으로 단, 안토니오가 보증을 서야하네.

어째서?

안토니오는 좋은 사람이지.

 

여기서 좋은 사람이라는 뜻은 바사니오에게 빌려준 돈만큼 값어치가 있다는,

즉 신용이 있다는 거죠.

 

안토니오에 대해 나쁜 평판이라도 들었소?

아...아니오, 내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안토니오가 신용이 있다는 얘기오.

삼천 두캇 이 채권은 받아도 되겠어.

 

어떤 대출에든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배가 침몰할 수도 있죠

비록짦은 항해일지라도 대부업자는 그 위험에 대해 보상을 받아야합니다

그 보상을 우리는 이자라고 부르죠

 

베네치아에서 해외 무역은 이같은 금전 거래 없이는 불가능 했습니다.

또한 오늘날까지 국제 무역에 근간을 이루고있죠.

그런데 왜 샤일록은 나쁜 인간으로 그려졌을까요?

왜 돈대신 한점의 살, 즉 안토니오의 죽음을 요구했던 것일까요?

어째서 셰익스피어는 이러한 비정한 대금업자를 등장시켜서 악명높은 금융가의 전례를 남겼을까요?

 

그 해답은 샤일록이 유대인이라는데 있습니다.

베네치아에 2주이상 머무는 유대인들은 등에 커다란 노란색 원을 그리거나 노란 모자를 써야했습니다.

그리고 게토 누오보라는 특정 거주지역에 갇혀 살았습니다.

이곳은 베네치아에 유대인 거주 지역입니다.

비록 천대받기는 했지만 베네치아에서 유대인의 존재는 용인됐습니다

그이유는 기독교도 상인들이 하지 않는 서비스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대금업이었죠

피보나치가 이자를 계산해 냈을진 몰라도, 그 이자를 거둬 들인 것은 샤일록이었습니다.

이건물에서 베네치아의 유대인들은 돈놀이를 했습니다

작은 탁자를 놓고 의자에 앉아서 일을했죠.

영어로 은행 뱅크의 어원은, 바로 이 의자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방코에서 유래됐습니다.

상인들이 왜 이곳 유대인들에게까지 돈을 빌리러 왔을까요?

이자를 받는것이 기독교도 상인들에게는 죄악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리 대금에 대한 중세 교회의 엄격한 제한은, 유럽의 금융 발달을 가로막았습니다.

아니 지옥에 간다는데 어떤 상인이 대금업에 손을 대겠습니다.

지옥에서의 영원한 속죄 피렌체의 대성당 두오모에 그려진 이 그림은 조르지오 바사리와 페데리코 주카리의 공동작입니다.

그 아랫부분은 도미니코 데 미켈리노가 단테 신곡의 한 장면을 성당 벽화에 담아냈습니다.

단테에 따르면, 제 7지옥에는 고리대금업자를 위한 자리가 따로 있다고 합니다.

 

고리대금업자가 지옥에 떨어지면 목에 무거운 지갑을 걸고 영원히 고문을 받게됩니다.

이자를 받는 것은 유대인들에게도 금기사항입니다.

구약 신명기 23장에는 형제에게 이자를 받으면 안 된다고 나와있지만은 남이라면은 이야기가 또 다릅니다

같은 유대인들끼리는 안 되지만은, 기독교인들에게 빌려주는 것은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고리대금 서비스를 제공한 대가로 유대인들은 사회로부터 소외를 받았습니다

게토 누오보라는 지역에 갇혀지냈고, 유대인하면 돈이라는 고정관념도 수백년동안 사라지지 않았죠

하지만 대금업은 당시 유대인에게 허용된 유일한 경제활동이었습니다.

샤일록은 결국 좌절합니다.

법원 판결은 1파운드의 살점에 대한 소유권은 인정하되, 안토니오를 죽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유대인인 샤일록에게 살인미수라는 죄목으로 재산몰수와 사형선고가 내려집니다.

개종을함으로써 겨우 살아남았죠.

 

알고보면 상당히 위험한 직업이죠.

베네치아의 상인은 경제학과 유대인 혐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합니다

그런데 그토록 멸시하는 유대인의 돈을 채무자들은 왜 성실히 갚았을까요?

샤일록의 동료들이 같은 말로를 겪지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날에도 원시적인 형태의 대부업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현대판 샤일록도 쉽게 볼 수 있죠. 

아, 이곳은 스코틀랜드의 잔 세틀스톤입니다. 철제 건축 양식으로 서부에서 가장 험한 동네 중 한 곳이죠

이곳의 남성 평균 수명은 64으로

방글라데시의 남성 평균 수명보다도 조금 더 낮습니다

주민들은 대부분 연금을 타기전에 사망을 한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과연 이곳까지와서 돈 놀이를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또 모르는 일이죠.

 

그 주인공은 바로 고리대금업자입니다.

그들에게 담보로 연금 카드를 주면 돈을 빌려주죠

연금이 나오면 그 카드로 우체국에가서 돈을 받아 이자를 더해 갚는겁니다.

샤일록의 영업 구조와 똑같습니다.

현재 스코틀랜드의 고리대금업은 성행중입니다.

글래스고 고리대금업자의 장부 중 일부입니다, 무척 재미가 있는데요.

10파운드를 빌려주면 주말에 12.5파운드를 돌려 받는다

일주일동안의 이율이 25%인 셈이네요.

연 이율로는 무려 11,000,000%에 이릅니다.

 

하루 생활비로 5.9파운드를 쓰는 사람이 무슨 수로 그정도 이자를 낼 수 있을까요?

빚을 모두 갚을수는 있을까요?

하지만 이곳 글래스고에서는 채무 불이행이 불가능합니다.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갚지 못해서 상해를 입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채무자가 돈을 갚지않으면 손해가 크기 때문에, 대금업자는 탐욕스럽고 무자비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부터 21세기의 스코틀랜드에 이르기 까지 고리대금업자들은 천대를 받았습니다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에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대가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대부업자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관대해도 돈을 벌지 못하고, 너무 비정하게 대해도 채무자들은 결국 빚을 갚지 못할테니 말이죠.

정답은 덩치를 키워 강해지는 것이엇습니다, 드디어 은행을 만들 때가 온 것 입니다.

 

15세기 이탈리아, 신용대부의 핵심기능을 해 온 게토지역에 합법적인 은행이 생겼습니다.

이와함께, 한 가문이 부흥하게됩니다.

바로 메디치가입니다.

메디치가의 번성과 함께, 신용의 시대가 도래합니다.

대부업은 과거와 달리 영광스러운 일이자 새로운 권력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메디치 가문의 권세는 피렌체 곳곳에 유산으로 남아있습니다.

약 400년 동안 메디치가의 딸들이 황실로 시집을 갔고, 아들 셋은 교황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마키아벨리가 메디치가의 역사를 기록한 것은 당연한 일 일지도 모릅니다

메디치가는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미켈란젤로부터 갈릴레오까지, 메디치가가 르네상스시대 전체를 후원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곳 우피치 미술관에는 메디치가 소유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예술품들이죠.

과연 메디치가가 이 예술품들을 전부 사들였을가? 우리들이 간과하기 쉬운 부분입니다.

메디치가는 떼 데 감비오라는 환전업 조합가운데 가장 운이 좋은 가문입니다.

의자에 앉아서 일을 했기 때문에 만치리에 혹은 까블리에리로 불렸죠.

양모 조합 거리인 바로 이 곳, 비아델 아르떼 델라 라나에 최초의 메디치 은행이 있었습니다.

 

1390년대 이전만 해도 메디치가는 동네 불량배에 불과했습니다.

믿을만한 금융 서비스가 아닌, 저질 폭력으로 유명했죠.

피렌체에서 각종 범죄를 저지른 벌로 17년 동안 메디치가의 사람 5명이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러던중에 지오반니 디 비치데 메디치가 등장 했습니다.

그는 메디치가의 영업을 합법화 하는데 힘썼습니다.

결국 고리대금방지법을 피할 수 있는 독창적인 회계법으로 그 꿈을 이루게되죠.

메디치 은행의 장부를 보면 대외 무역 거래에서 상업 어음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시 교회는 대출 이자 받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하지만 약삭빠른 상인이라면 무역 거래에 필요한 환전 서비스를 놓치지 않았겠죠.

이자가 없으니 죄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환전의 대가로 적은 수수료를 받았을 뿐이니까요.

 

가불을 받을 경우 그 기간만큼 수수료가 붙었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메디치 은행에 돈을 맡긴 예금자들에게도 그에따른 보상이 주어졌습니다.

이자가 드러나지 않는 형태로 신용을 사고 팔았죠.

고리대금업이 은행업으로 진화한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지오반니 메디치가 쓴, 리브로 세그레토에는 메디치 은행의 성공담이 기록돼있습니다.

메디치 은행의 비결은 규모보다 다양화를 추구한데 있죠

이전에 이탈리아 은행들은 개별 사업체여서 단 한건의 불량 채권으로도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메디치 은행은 조합 형태로 운영이 됐습니다.

바로 이 분권 체제가 엄청난 수익의 비밀이었습니다.

 

메디치 은행은 지오반니의 통솔 아래 피렌체에서 베네치아를 거쳐 로마까지 영업망을 넓혀 나갔습니다.

규모확장과 분산을 통해서 대출에 따른 위험을 줄일 수 있었고 이는 곧, 채무자의 비용을 낮추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리대금업자와 은행, 샤일록과 메디치가의 차이였습니다

세금 신고용으로 작성한 자산 목록이 끝이 없는데요, 자 한 번 보겠습니다.

총 91,089 플로린화로 당시로선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죠.

1429년 지오반니는 후계자들에게 자신이 만든 금융 기준을 지키라는 당부를 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오반니의 장례식은 은행업을 떳떳한 장사, 게다가 돈이 남는 장사로 만든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는 자리였습니다.

 

그의 아들 코시모를 통해 부의 축적은 권력의 축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부친이 사망한지 20년 후, 코시모 데 메디치는 피렌체의 군주나 다름 없었습니다.

 

교황은 말했습니다. 정치는 코시모의 집에서 이루어진다.

그가 선택하는 이가 관직을 맡고, 법도 전쟁도 평화도 모두 그가 결정한다.

우리가 부르지 않을뿐 그가 왕이다.

보티첼리의 이 작품은 젊음과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사실은 죽은 코시모 데 메디치에게 바친 작품이죠, 메달을 자세히 보면 이탈리아어로 나라의 아버지라고 세겨져 있습니다.

 

150년만에 메디치가는 뒷골목 불량배에서 유럽 금융계의 큰 손으로 탈바꿈 했습니다.

동방박사의 경배라는 이 작품은 메디치가가 이륙한 금융 혁신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림에 나오는 세 동방박사의 실체는 예수의 발을 닦는 코시모와 그의 아들 피에로 그리고 지오반니 입니다.

왼쪽에 칼을 든 젊은이는 로렌조고요

메디치가에 선사하기 위해서 은행 조합에서 주문한 그림이었습니다

그림 제목을 메디치가에 대한 경배로 바꾸는게 나을뻔했죠.

지옥으로 떨어질 운명의 은행가들이 하느님과 가장 가까워진 셈이죠

돈의 힘을 가장 잘 표현한 대목이 아닐까요?

결국 메디치가에 의해서 현대 금융업이 탄생했다고 봐야겠죠.

돈으로 정치 권력을 거머쥔 세력은 메디치가가  처음이었습니다.

금융의 세계는 클수록 좋다는 원칙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규모를 키우고 사업을 다양화시켜서 위협을 분산시켰습니다.

대출 뿐만아니라 외환 업무에도 집중함으로써 불량 채권을 줄일수가 있었던 것이죠

이 모두가 코시모의 가족들에게는 훌륭한 사업 모델이었습니다.

 

그러한 메디치가도 불사신은 아니었습니다. 귀족들에게 너무 많은 돈을 빌려줬다가

큰 손해를 입기도 했죠. 귀족들은 돈을 갚지도 않고 태연한 얼굴로 돈을 받으러 온 은행직원들을 쫒아냈습니다.

어느 은행이든 불량 채권은 골칫거리입니다.

얼마동안 현대 은행가들을 이 해묵은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자신들이 메디치가의 사람들보다 똑똑하다고 믿었겠죠.

 

피렌체의 지구 반대쪽 도시 테네시주 멤피스입니다.

세계 경제의 판도는 르네상스때와는 달리 변해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현대 금융이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크게 달라진 것입니다.

미국은 채무를 발판으로 성장한 나라입니다.

메디치 은행이 부유층을 상대한 반면에, 미국 은행들은 누구에게나 돈을 빌려줍니다.

멤피스는 파란 스웨이드 신발, 립 바비큐 구이 그리고 파산자들로 유명합니다.

멤피스의 사람들은 빚을 갚느라고 허덕입니다.

 

쇼핑몰 이름이 아주 노골적이네요

식료품 가격은 저렵합니다.

저 소득자에대한 세금 감면 제도를 알려주는 세무사가 있습니다.

차량 소유권을 담보로 돈을 빌릴 수도 있다는 군요.

급여를 담보로 돈을 빌릴 수 있는 가게가 있고, 백화점만한 전당포도 있습니다.

전당포에 맡길 만한 게 없으면 여기 GLB 플라즈마에서 25달라씩 받고 피를 팔면 되는데요,

아,피를 빨아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사실이군요

파산자들을 상대로 먹고사는 경제라니, 그저 놀랍습니다.

 

한편으로 글래스고 동쪽 끝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고리대금업자들이 돈 대신 살을 떼어가는 세계와는 천지 차이입니다

이곳에는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넘처나는데도 불구하고 대부업으로 돈을 버는 요령을 터득한 것 같습니다.

 

이 친구는 리치입니다.

채무자의 빚 대신, 차를 회수하는 일을 하고있죠.

리치: 총을 잡고서는 철컥철컥, 총에 탄알을 넣는게 보였어요. 총대로 한 대 얻어 맞고 바로 여기요 죽는 줄 알았습니다

갑자기 채무자가 트럭을 내놓던가, 목숨을 내놓던가 라고 소리치더라고요.

이렇게 들으니 영화의 한 장면 같군요 저도 직업을 바꿔야겠습니다.

리치: 헤.긴장감이 넘치죠...

파산의 도시에서 차를 회수당하는 경우는 흔한 일입니다.

자동차 회수 연합은 매주 차량 500대 가량을 되팝니다.

자동차는 경매로 팔리고, 새 주인 역시 대출 이자가 밀리면 그 차는 회수돼서 재활용됩니다.

멤피스지역의 이 같은 일들은 다른 채권 회수자들이 하는 일과 비슷합니다

규모가 엄청나다는 것 말고 다른점을 찾는다면 불량 채권의 회수와, 담보물의 재 판매가 모두 쉽게 이뤄진다는 점입니다.

이곳 주민들은 빚지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자본주의 경제가 손쉬운 파산에 기반을 두고있는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집안에 남는 물건 없이 차까지 회수당하고 나면, 파산 전문 변호사의 도움을 받게됩니다.

작년 한 해동안 테네시 주민 중 13000여명이 파산 신청을 했습니다.

 

변호사: 그럴경우 생각지도 않게 월 납입금이 오르게 됩니다.

 

파산자들은 매주 변호사와 만나서 채무이행 계획을 세웁니다

 

아 이 경우에는 재택 융자금이 있네요, 차 할부와 아. 차가 두대군요. 다른 채무항목은 없는 것 같은데요.

사실은 차가 세대입니다. 

세대요?

예,이웃 주민 소유의 차량인데 그것을 담보로 잡혔군요.

아, 자세히 좀 말씀해 주세요. 채무금액이 얼마고 지금 빚을 어느정도 갚은거죠?

총 채무액이 241달라 11센트였는데 107달라로 줄었군요

와 원금을 반으로 줄였네요.

 

1996년에서 2006년까지 미국에선 매년 100만건에서 200만 건의 파산신청이 접수됐습니다

대부분 돈을 갚는 대신에 파산을 선택한 것이죠

중세 이탈리아와 영국에서 파산은 경제적으로 무척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선 좀 다른 것 같군요.

미국 자본주의의 특징은 빚을 졌다 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1세기 미국에는 19세기 영국처럼 빚을 갚지 못하면 끌려가는 채무자 감옥도 없습니다.

1898년부터 모든 국민에게 파산법 7장과 13장에 따라 채무청산과 개인 회생 신청이 보장됐기 때문이죠.

인간이 태어날부터 자연적으로 부여되는 천부인권에 파산권도 추가된 셈입니다.

 

미국의 법은 기업가를 위해 존재합니다. 새로운 사업이 가능하게끔 말이죠

한 두번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한 번의 실패 때문에 좌절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죠.

오늘의 파산자가 내일의 억만장자가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미국에서 성공한 인물들을 살펴보면 초기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 코미디언 버스터 키튼, 포드 자동차 회사 사장으로 유명한 헨리 포드도 그 중 한명입니다.

이들의 성공은 실패 후 재기의 기회자 주어졌기에 가능했습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가운데 일부가 연체됐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파산법 13장에 따르면 채무를 없에는게 아니고 채무이행계획을 다시 세우는 것 뿐이니까요.

 

셰익스피어의 안토니오처럼 대부업자를 불쌍한 채무자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 취급해서는 곤란합니다.

대출은 경제 성장의 기초입니다. 하지만 은행이 출현이 가능해야 고리대금업에서 한 단계 올라갈 수 있습니다.

채무자들이 정상적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을 때 비로서 고리대금의 횡포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투자자도 돈을 믿고 맡길 은행이 있어야만 자신의 지갑을 엽니다.

여기서 잠깐만요, 은행이 해결책이라면 지난해 왜 다들 파산신청을 했으며, 왜 금융 위기가 터졌을까요?

멤피스의 불량 채권이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야기한 배경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은행의 주택 담보 대출이 증권의 형태로 바뀌어 무분별한 투자자들 사이에서 거래되면서 은행과 채무자의 정상적인 관계가 깨졌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은행업이 아주 간단했습니다. 363의 법칙, 즉 예금이자는 3%, 대출이자는 6%, 오후 3시에는 골프치러 간다는 뜻인데요, 요즘들어 금융업이 지나치게 복잡해졌습니다.

연이은 금융혁신으로 멤피스같이 가난한 동네의 가정에서 받은 주택담보대출을 CDO 즉 부채담보부증권같이 겉으로는 그럴뜻 해보이는 투자 상품으로 바꿔버렸습니다.

납을 금으로 만들고, 쓰레기를 우량 채권으로 만드는 금융 연금술이 가능했던 것은 은행과 함께 현대 금융의 양대 축을 이루는 채권시장이 급성장했기 때문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본드씨에게 채권 이야기를 직접 듣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내 공부하기

1. 교수

2. 은행의 파산, 금융시장이 붕괴, 주식시장 폭락 이유는?

3. 서브프라임과 프라임 대출의 차이는?

4. 현재 미국 총 통화 공급 규모와 한국의 총 통화 공급 규모는?

5. 조지 소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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